다산과 서포 (시가 있는 밥상)- 오인태 시인

오늘, 우리시대의 이념은 무엇인가? 있긴 한가? 그 많은 이론가, 논객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졌는가? 실은 이런 물음조차 얼마나 실없고 객쩍은 짓인가.

혼란의 시대, 어둠의 시대에 다산의 시를 읽으며 운동과 문학의 문맥을 애써 찾던 때가 있었다. 지금 그 내용이야 온전히 떠올릴 수 없지만 그때 받은 충격과 감동의 기억은 생생하다. 두 세기 전에 이미 오늘을 내다본듯한 밝은 이론과 혁명적인 문장, 민중과 국가에 대한 애정과 열정 넘치는 삶이라니.

이후 다산은 오랫동안 내 스승이었다. 그 시절 다산에게 이끌렸던 사람이 어디 나뿐이었으랴.

길이 보이지 않는 어둠의 시대, 다산초당을 찾았다. 어딜 헤매다 그렇게 늦었던지, 어둑발이 내리는 해거름녘이었다. 사람들은 산을 내려가고, 어둠에 묻히는 초당은 적막했다. 홀로 우두커니 서 있다가 내려오는 등 뒤를 다산이 지켜보고 계셨다.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셨던 걸까.

다시 사무치게 다산이 그리운 시절 댓잎 수런대는 기척에도 귀를 쫑긋 세우며, 푸른 근대 몇 잎으로 밥을 싸는 저녁이다. *노도의 서포는 수저를 드셨을까, 놓으셨을까.

*서포 김만중이 구운몽을 쓰던 노도가 내가 사는 사택의 지척에 있다.

 

차림/ 바지락시금치국, 가자미구이, 생미역초무침

 

혼자 먹는 밥

찬밥 한 덩어리도
뻘건 희망 한 조각씩
척척 걸쳐 뜨겁게
나눠먹던 때가 있었다

채 채워지기도 전에
짐짓 부른 체 서로 먼저
숟가락을 양보하며
남의 입에 들어가는 밥에
내 배가 불러지며
힘이 솟던 때가 있었다

밥을 같이 먹는다는 건
삶을 같이 한다는 것

이제 뿔뿔이 흩어진 사람들은
누구도 삶을 같이 하려 하지 않는다
나눌 희망도, 서로
힘 돋워 함께 할 삶도 없이
단지 배만 채우기 위해
혼자 밥 먹는 세상

밥맛, 없다
살맛, 안 난다

-시집 ≪혼자 먹는 밥≫에서

오인태 시인은 62년 경남 함양에서 태어나 91년 문예지『녹두꽃』추천으로 시인이 된 뒤, <그곳인들 바람 불지 않겠나> <혼자 먹는 밥> <등뒤의 사랑> <아버지의 집> <별을 의심하다> 와 같은 시집과 동시집 <돌멩이가 따뜻해졌다>를 펴냈습니다. 진주교대와 진주교대대학원을 나와 경상대학교대학원에서 문학교육을 전공하여 교육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교육전문직으로 일하며 틈틈이 시와 동시, 문학평론, 시사 글 등 다방면의 글쓰기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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