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추는 사회 – 유희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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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내가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셨습니다. 내가 세살 때 어디서 배웠는지는 모르겠으나 노래 하나를 배워 동네 순회공연을 하듯 아주 앙징맞고 깜찍하게 춤을 추며 불렀습니다. 그 노래를 난 아직도 기억합니다. 친인척이 오면 아버지는 “희주야아~~”하고 부르셨고 난 자동으로 척 하고 웃목에 서서 공연을 시작 하곤 했습니다.

-노아 할아버지 배를 젓는다. 높은 산꼭대기에서 배를 젓는다. 앞집에 김첨지 뒷집에 박첨지 모두가 외면하여도 높은 산꼭대기에서 배를 젓는다. —

난 다 크도록 노아가 누군지 몰랐습니다. 교회를 처음 나갔던 14살이 되고서야 노아 할아버지의 정체를 알게 된 것입니다.

(그림 : 유희주)

1960년대와 1970년대를 거쳐 한국 교회는 폭발적인 성장을 했습니다. 언니들 중 누군가가 나를 데리고 교회를 갔었다면 배울 수도 있을 법한 노래지만 난 교회에서 배우지 않고 흘러 다니는 노래를 누군가에게 배 운듯 했습니다. 나도 모르는 노아 할아버지를 붙들고 선교를 시작한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 집을 비롯하여 친인척들 중 교회를 다니는 이가 없었던 때였습니다. 14살에 처음 교회에 나갔으나 교회의 상날라리였고 불과 몇 년 전에서야 내가 하나님을 내 삶에 어떻게 개입 시켜야 하는지를 서서히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아직도 내 인간적인 속성과 하나님의 섭리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매우 인간적인 사람입니다.

나의 가무 실력은 그때부터 시작하여 김추자와 펄 시스터즈를 섭렵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당시 내가 주로 불렀던 노래는 김추자의 ‘거짓말이야’,‘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그리고 펄시스터즈의 ‘싫어’,’커피 한잔’등이 있었습니다. 물론 공연 횟수도 많아 졌고 연습도 늘려야 했는데 우리 집에는 TV가 없어 다른 집에서 본 노래와 춤을 엄마의 보자기와 월남치마로 코디를 한 후 연습에 임했습니다. 중학교 때 체육대회 응원단장을 했던 나는 하루 종일 서서 화려한 털을 흔들어 대며 춤을 추었습니다. 이젠 나이가 들어서 흥만 있지 폼은 절대로 나지 않습니다. 알지도 못하던 노아 할아버지란 노래로부터 시작된 신앙의 역사는 지금도 진행 중이고 앞으로도 계속 될 것입니다. 이제는 엇나갈 염려는 없는 듯합니다. 내 젊은 날은 방황을 아주 멋지게 미친 듯 했었지만 노아 할아버지가 배의 노를 잘 잡고 계셨듯이 나도 잘 잡고 있었으니 지금 기쁨과 축복을 먼저 감사하는 사람이 되었겠지요.

내가 앙징맞게 노래하던 그 때 세계 도처에서는 피바람이 불고 있었습니다. 1968년에 프랑스에서는 5월 혁명이 있었습니다. 세계의 진보 세력들이 자유와 해방을 찾아 노도처럼 일어섰던 때였습니다. 소비에트 연방이 간섭하던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일어난 민주화 운동도 있었습니다. 그 시대를 배경으로 한 [프라하의 봄]이란 영화를 봤었는데 뜨거운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늘 기대 수준에 못 미칩니다. 그것은 그 시대가 폭풍 같은 한편의 드라마이기 때문에 아무리 잘 만들어도 역사의 사실성 보다 훨씬 못 미치기 때문일 것입니다.

꼬맹이 계집애가 노래 부르고 있을 때 자유와 해방을 위해 무수한 학생들이 죽어갔던 것입니다. 그 때 우리나라도 민주화 바람이 저 멀리서 생성되고 있었습니다. 그 때는 이십 여 년 후에 그 바람이 우리나라를 덮을지 아무도 몰랐을 것입니다. 수많은 국민들이 피를 흘리고, 미래를 희생하는 일이 청년 본연의 자세가 되는 그 시기가 저벅저벅 걸어오던 때였습니다.

프랑스의 5월 혁명, 체코슬로바키아의 민주화 운동 그리고 1987년도에 있었던 우리나라의 6월 항쟁은 기억해야 할 민주화 운동입니다. 우리는 아직도 또 다른 대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뜨거운 혁명을 준비해야 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것이 역사인 모양입니다. 무엇인가로부터 끝없이 인간을 위해 혁명을 일으키는 것 말입니다.

교회 식구들 중 선우와 다온이는 이제 걸음을 겨우 놓는 아이들입니다. 이 아이들의 재롱을 보면서 이 아이들이 꿈꾸는 혁명은 어떤 모습일지 생각합니다. 아직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되지 않은 땅이지만 그것은 우리 세대의 몫인 것 같고 이 아이들의 몫은 아마도 자본이 먹어 치우고 있는 인성 회복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잘 클 수 있게 지역사회 공동체인 교회가 건강해져야 한다고 노아 할아버지 노래를 하던 계집아이가 바람에게 기도를 전하고 있는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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