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시
혓바닥을 깨물 통곡 없이는 갈 수 없는 땅
발가락을 자를 분노 없이는 오를 수 없는 산
백두산에서
한라산에서
지리산에서
무등산에서
그리고 피어린 한반도의 산하 구석구석에서
민족해방과 조국통일을 위하여
장렬히 산화해 가신 모든 혁명전사들에게
이 시를 바친다.
1.
지금으로부터 어언 120여 년 전
동아시아의 미해군 전략요충지로 조선이 결정된 지
80년의 모진 세월이 흐른 1945년 불볕 여름
한 손엔 ‘빵’과 또 한 손엔 ‘해방군’의 탈을 쓰고
발톱까지 무장한 채 당당하게 상륙한 미제국주의자들은
마침내 순결한 조선의 하늘과 푸른 산하를
두 토막으로 분질러 놓았다.
그리고 다시 40여 년의 기나긴 세월이 흘렀건만
일본 총독부가 미대사관으로 바뀌었을 뿐
미국의 ‘창살 없는 감옥’
이 식민지 산하는 조금도 변한 것이 없었다.
그리하여 미제국주의 침략사 120여 년
다시 써야할 피어린 민족해방투쟁의 한국현대사
압제의 사슬을 이빨로 뚝, 뚝 끊으며
붉은 피로 얼룩진 그 장엄한 역사의 수레바퀴를
우리 어찌 잊을 것인가.
바람 부는 대로 쓰러지는 풀잎이 아니라면
결코 그들의 노예가 아니라면
우리 어찌 보고만 있을 것인가.
2.
이 땅은 아메리카의 한 주(州)
그들의 병영에서 짐승처럼 사육되어 왔던 수많은 날들
그 수많은 신음의 밤들을 누가 잊을 것인가.
누가 잊으라고 하는가.
1948년 4월 3일 ‘제2의 모스크바’
밤마다 먼저 간 동지들의 피를 묻고
살을 묻고
뼈를 묻는
혹한의 한라산, 그 눈 덮인 산하
붉은 피를 흘리며 끝내 숨져간
이름 없는 혁명전사들의 끊어질 듯 끊어질 듯
끝내 이어지는 저 붉은 핏자국을 누가 잊는가.
누가 잊을 것을 강요하는가.
동상으로 썩어문드러진 발가락을 자르고
뼈를 깎는 모진 고문과 추위에
여성전사들의 생리마저 얼어붙는 밤
그들은 기어이 갔다.
총알 박힌 다리를 절룩거리며
동지의 어깨에 매달려
진지로 돌아가다
진지로 돌아가다
끝내 쓰러져버린 그들은 갔다.
아-
기어이 갈 곳으로 가고야 마는가.
혓바닥을 깨물 통곡 없이는 갈 수 없는 땅
발가락을 자를 분노 없이는 오를 수 없는 산
제주도의 혁명전사들은 그렇게 갔다.
미제의 각을 뜨다가
적들의 심장에 불을 지르다가
끝내 다 뜨지 못한 채
끝내 다 지르지 못한 채
한줌 피 묻은 뼛가루로 날아갔다.
적과 더불어 싸워서 죽은
우리의 죽음을 슬퍼 말아라.
깃발을 덮어다오.
인공(人共)의 깃발을
그 밑에 죽기를 맹세한 깃발
….
3.
30여년 만에 걸어보는 이 학살의 숲은
조금도 변한 것이 없다.
산등성이마다 뼛가루처럼 쌓여있는 흰 눈이며
나뭇가지마다 암호를 주고받는 새들의 울음소리며
멀리 사람 실은 배 한 척
돌 실은 배 한 척 떠나는 바다며
굶주린 배를 움켜쥔 채 허겁지겁 땅을 파헤쳐
씹고 또 씹었던 이 풀뿌리와 나무껍질이며
마지막 남은 낙엽마저 가솔린 냄새를 풍기며 불탔던
이 학살의 숲은
그러나 아직도 총소리로 가득하다.
움직이는 것은 모두 우리의 적이었지만
동시에 그들의 적이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보고 쏘았지만
그들은 보지 않고 쏘았다.
학살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날
하늘에서는 미군 정찰기가 살인예고장을 살포하고
바다에서는 미군 함대가 경적을 울리고
육지에서는 술 취한 기마대가 총칼을 휘두르며
모든 처형장을 진두지휘하던 그날
‘한국판 KKK단’인 서북청년단이 아편에 취한 채
한림의 금악리를 빨갱이 마을로 지목해
80여 남녀 중학생들을 금악벌판으로 끌고 가
집단총살하고 수장한 다음
서귀포 정방폭포와 천지연폭포로 몰려가
빨치산의 젊은 아내와 딸들을 발가벗겨
나무와 바위에 묶어 표창연습으로 삼다가
마침내
모두 대검으로 젖가슴을 잘라 폭포 속으로 던져버린 그날
석양에 물들어가는 사라봉 봉수대 솔숲에서는
또다른 서청의 극우반공청년들이 하느님을 외치며
감자꽃 같은 처녀들을 윤간한 뒤 생매장해버린 그 가을 숲
서귀포 임시감옥 취조실에서는
빨치산과 그 내통자들의 손톱과 발톱 밑에 못을 박고
몽키스패너로 혓바닥까지 뽑아버린 그날
바로 그날
관덕정 인민광장에서는 사지가 갈가리 찢어져
목이 잘린 얼굴은 얼굴대로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몸통은 몸통대로
전봇대 위에 전시되어 있었다.
“이것이 바로 빨갱이다!”
“빨갱이의 종말은 이렇다!”
강제로 끌려나와 광장을 가득 메운 도민들에게
미친(美親)놈들이 니뽄도로 시체들을 쿡쿡 쑤시며 소리쳤다.
처참하게 찢어져 형체조차 분간할 수 없었지만
도민들은 속으로 속으로만 어림잡았다.
저건 이덕구
저건 김운민
저건 김병남
저건 남 진
저건 박남해…
통곡도 오열도 없었다.
도대체 사람이어야 통곡이라도 하지,
그것은 사람이 아니었다.
결코 죽은 사람도 아니었다.
그것은 푸줏간에 걸린 고깃덩어리에 불과했다.
한 개의 총알이 심장을 뚫고 간 것은
차라리 행복한 죽음이리라.
바다에서 불어오는 모래바람이
한라산을 미친 듯이 뒤흔들었다.
“미군은 즉각 철수하라!”
“이승만 매국도당을 타도하자!”
“조국통일 만세!”
“제주 빨치산 만세!”
핏빛 석양이 관덕정 인민광장 위로 지고 있었다.
산은 다시 한 번 알몸이 되고
그 빈숲에 그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살아 흘러가고
죽어 흘러가고
마침내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흘러갔다.
몸 가릴 곳 하나 없는 이 참혹한 겨울 숲
마지막 몇 사람이 기적처럼 살아 걷는
이 학살의 숲
누가 그날을 기억하지 않는가.
4.
돌려주자.
오늘도 노란 유채꽃이 칼날을 물고 잠들어 있는
아- 피의 섬 제주도, 그 4․3이여.
우리의 심장에서 피어나는 이 진달래꽃을
그 누가 꺾을 수 있으랴.
돌려주자.
기름진 지주와 자본가의 살을 죽창에 꽂아
그들에게 돌려주자.
공장의 프레스에 잘려나간 노동자들의 손가락을
포크레인에 찍힌 철거민의 팔과 다리를
밭을 갈아엎고 농약 속으로 사라져간 농민들의
그 골수에 사무친 원한을
그리고 푸른 5월의 광주를 짐승처럼 짓밟고 간
저 피 묻은 원수들을
찢어
갈가리 찢어서
‘조국 아메리카’의 후예들에게 돌려주자.
그리하여
미제국주의자들은 똑똑히 들어라.
우체통이 빨간 것은
우리 인민의 사상이 빨갱이에 물든 탓이 아니라
바로 너희 양키들 때문임을
우리 한반도 인민들의 피가 붉은 것도
바로 너희들 때문임을
그리고 침묵하라.
피로 맺어진 ‘혈맹우방’이여.
그대들이 두 눈 뜨고 살아있는 한
우리는 잠들 수가 없다.
너희들의 칼날 위에서
우리는 결코 잠들 수가 없다.
그 누구도 잠들 수 없는 이 해방의 산하에
싹둑 잘려나간 손가락들이
아직도 펄펄 살아 뛰는
붉은 피가 있어
농약 먹은 가슴으로 타오르는
싯붉은 피가 있어
민족해방의 불꽃으로
조국통일의 불꽃으로
이 헐벗고 굶주린 노동자 농민들의 여윈 손들이
마침내 혁명의 숲을 이룰 때까지
저 간악한 미제의 각을 뜨고
저 미친(美親) 매국노들의 심장에 불벼락을 안겨주자!
아직도 눈을 감지 못한 조국의 영혼들에게
적들의 시체를 넘고 넘어 동지들의 원수를 갚아주자!
그리하여 천 년의 세월이 흐를지라도
결코 용서하지도 말고
결코 잊지도 말자!
5.
오늘도 잠들지 않는 남도 한라산
그 아름다운 제주도의 신혼여행지들은 모두
우리가 묵념해야 할 학살의 장소이다.
그곳에 핀 노란 유채꽃들은 여전히 아름답다.
그러나 그 꽃들은 모두 칼날을 물고 잠들어 있다.
An Epic
Mount Halla
Prologue
This poem is dedicated
To all the revolutionary heroes who sacrificed their lives
For the liberation of our people and the reunification of our motherland
On the land you cannot cross without the cry of biting off your tongue
On the mountain you cannot climb without the rage of cutting off your toes
On Mount Baekdu
On Mount Jiri
On Mount Mudeung
And in every corner of blood-stained Korea
1.
In the blistering hot summer of 1945
After eighty bitter years had passed
Since the US had chosen Chosun as a naval foothold
During that summer, with ‘bread’ in one hand and wearing the mask of a ‘liberation army,’
Armed to their toenails, the US Imperialists swaggered ashore
And cut in two
The sky, the green mountains and rivers of innocent Choson.
Now, another 40 long years have passed
Yet nothing in this colonized country, an American ‘jail without bars,’
Has changed, except the Japanese Colonial Government Office is now the US Embassy.
The 120-year history of US Imperialist invasion
The blood-stained history of national liberation ~
How can we ever forget
This somber history’s wheels stained with the blood we shed
Breaking through the chains of oppression with our teeth?
If we are not grass leaves that blow in the wind
If we are not their slaves
How can we just look on?
2.
Who can forget
This country is just another state of America?
Who can forget all those nights filled with moans
Those days when we were caged like animals in their barracks?
Who tells us to forget?
From March 3rd of 1948, in this ‘Second Moscow,’
Every night we buried the blood of our fallen comrades
Buried their flesh
Buried their bones.
Frozen Mount Halla covered with snow
Those unknown warriors who bled to death
Who can forget?
The endless red trails from their blood
Who is forcing us to forget?
Losing their decomposed toes from frostbite
On those frozen nights when their female comrades’ periods froze,
In the torture and bitter cold
They passed.
Limping on bullet-riddled legs
Hanging onto their comrades’ shoulders
On the way back to the base camp
On the way back to the base camp
They collapsed in the end and passed.
Ah~
Have they gone where they were meant to go?
On the land you cannot cross without the cry of biting off your tongue
On the mountain you cannot climb without the rage of cutting off your toes
The revolutionaries of Jeju Island fell.
While trying to cut up the limbs of the US Imperialists
While trying to set fire to their hearts
But before they cut up all their limbs
But before they set fire to all their hearts
They were blown into thin air like a handful of bloody ash.
Don’t be sad over our deaths
As we died fighting with the enemies.
Put the flag over our bodies
The people’s flag
Under which we have sworn to be buried.
….
3.
This genocidal forest I haven’t walked through in over thirty years
Has not changed a bit.
White snow covers every ridge of the mountain like ashes
Birds chirp on the branches of trees as if exchanging codes
Far in the ocean a ship with people on board
And another loaded with stone sail on.
The tree-barks and the grassroots we dug from the ground and chewed
As we held in our starving bellies
This genocidal forest
Where every last fallen leaf reeks of burning gasoline
Is still filled with the sound of gunfire.
Whatever was moving was our enemy
And yet it was also their enemy.
While we made sure to aim before we shot
They shot without looking
So began the genocide.
On that day
Up in the sky US reconnaissance planes dropped leaflets warning of mass murder.
In the ocean US naval ships sent their warning blasts
And on the land drunken mounted brigades wielding swords and guns
Patrolled the execution sites.
The Northwest Youth Alliance ~ the Korean KKK ~ high on opium
Having declared Geumak-li of Hamrim a village of communist sympathizers
Dragged out eighty middle-schoolers to the fields of Geumak
And shot them dead and buried their bodies at sea.
Then off they went to Jeongbang Waterfall and Cheonjiyeon Waterfall
Stripped down the young wives and daughters of Partisan rebels
Tied them to trees and rocks and used them as targets for bayonet practice.
In the end
They cut off their breasts and threw them into the waterfalls
On that day when
In the pine forest near Sarabong Bongsudae, aglow with the setting sun
Far-right mobs of the Northwest Alliance shouted God’s name
As they raped girls as pure as potato flowers and buried them alive.
And in the interrogation room of Seoguipo
They hammered nails under the Partisans’ fingernails and toenails
And ripped out their tongues with monkey wrenches.
On that very day
In the people’s square of Gwandeokjeong
They displayed quartered bodies
And cut-off heads
And arms
And legs
And torsos
Piece by piece on electric poles.
Poking the corpses with Japanese swords, the Pro-Americans yelled
At the village people who were dragged out and filled up the square,
“These are Reds!”
“This is the end of the Reds!”
The bodies were so ripped apart
The village people could only silently guess
That’s Lee Deok-gu
That’s Kim Yoon-min
That’s Kim Byeong-nam
That’s Nam Jin
That’s Park Nam-hae….
They neither wailed nor sobbed.
One can sob only for a human being.
These weren’t human beings.
These weren’t even dead human beings.
They were merely pieces of meat hung up in a butcher shop.
If a bullet had pierced the heart
That would have been a blessed death.
A sand storm blowing up from the beach
Shook Mount Halla to madness.
“All American troops out now!”
“Let’s overthrow Lee Seung-man’s gang of traitors!”
“Long live reunification!”
“Long live Jeju Partisans!”
The bloody sun was setting over the People’s Square.
The mountain became naked again
And into those empty woods they never returned.
Some flew by alive
Others flew by dead
In the end all the living things flew by and vanished.
This brutal winter forest where you find no shelter to hide your body
This genocidal forest where only the last few miraculously survived
Who will not remember that day?
4.
Let’s pay them back.
Ah – blood-stained island of Jeju, of April Third
Where even today yellow canola flowers sleep bearing blades
Who would dare cut off
These azalea flowers that have bloomed from our hearts?
Let’s pay them back.
Let’s stab the flesh of greasy landlords and capitalists with bamboo spears.
And let’s return
The laborers’ fingers that got cut off by factory machines
The evictees’ arms and legs that got hacked by forklifts
The deep rooted rancor of the farmers who plowed their lands to be poisoned by pesticides.
And let’s rip to shreds those enemies
Those bloody enemies who trampled upon
Kwangju in May
And give those shreds to
The descendants of ‘our motherland America’.
You,
US imperialists
Listen thus carefully to what I say.
Our mailboxes are red
Not because the people’s thoughts are stained by commies
But because of you, Yankees.
The people on our Korean peninsula shed red blood
Because of you.
Now be silent.
You, members of a ‘blood alliance’
While you are alive with both eyes open
We cannot fall asleep,
On the edges of your swords
We will never fall asleep.
On this liberated land where nobody can fall asleep
The fingers that were cut off
Are still alive and moving
With red blood inside.
Bright red blood glows
In the hearts that drank pesticides.
With the Fire of liberation
With Fire of our motherland’s reunification
Until the gaunt hands of ragged and hungry workers and peasants
Have built forests of revolution
Let’s cut up the limbs of those evil US imperialists
And let’s strike like lightning
The hearts of those Pro-American traitors!
Let’s avenge our comrades with the dead bodies of our enemies!
Even after a thousand years
Let us never forgive
Or forget!
5.
Mount Halla on Jeju, island that still does not sleep
All those honeymoon spots on this beautiful island
Are places of genocide that we must remember.
The yellow canola flowers there still bloom beautifully.
But all those flowers sleep bearing blades.
이산하 시인은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선전국에서 활동하던 1987년 3월, 사회과학무크 <녹두서평> 창간호에 ‘제주 4·3사건’의 학살과 진실을 폭로하는 장편서사시 <한라산>을 발표해 엄청난 충격과 전율을 불러일으켰다.
Translated by 임옥 Og Lim with 고유진 Yu jin K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