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Trees — 한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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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지우개로 지운 것처럼 하늘이 캄캄해지면
나무들은 아무도 모르는 지하로 가지
어린 나무는 그네를 타다가 수영을 하고
어른 나무는 주저앉아 아픈 다리를 주물러
그러다 드러누워 한숨 자기도 하지

나무가 꼼짝 안 하고
한자리서 버틴다는 건 말짱 거짓말이야
아무리 콧등에 침을 발라도
쥐가 나서 쉽지 않거든
이건 진짜 비밀인데,
용문사 은행나무나 신림동 굴참나무도
사실은 그렇게 천년을 버틴 거래

한밤중 아파트에서
숲을 내려다본 사람은 그것을 알지
폭탄 맞은 것처럼 시커먼 구덩이만 있고
나무는 한 그루도 없을 테니까
그러다 새벽이면
나무들은 땅으로 쑥쑥 올라와서
시치미를 뚝 따는 거지

 

Trees

 

When the sky gets dark as if erased
Trees go to an unknown underworld
Young trees play on the swings and swim in the pool
Old trees knead their aching legs
And sometimes lie down to sleep.

It’s a lie to say
That trees have been standing in one place all this time.
No matter what they try,
Their feet still fall asleep.
Here is a little secret
The Ginko trees at Yongmunsa and the Oak trees at Sillimdong
Have survived like that for a thousand years.

If you look out over the forest
From an apartment in the middle of the night
There won’t be a single tree
But only a dark hole as though a bomb had landed
And when daylight comes
Trees rise to the ground
Playing innocent with 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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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영 :  시, 동시, 동화, 시조 작가 플로리다 거주 동시집 ‘닭장옆 탱자나무’ 외 다수

번역 : 이화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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