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성대에 들렀다 계림을 보고 나오는 길이었습니다.
저만의 생각일지는 모르지만, 경주는 4계절 중에 가을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김씨의 시조 알지가 태어났다는 오래된 숲은, 떠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매력적이었습니다.
다그닥거리며 달려오는 마차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눈앞에 그림 하나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오른쪽에는 첨성대가 서있고 가운데에는 지팡이를 짚은 할머니 한 분이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습니다.
재 너머 아들네 집이라도 다녀오시는 모양이었습니다.
그리고 관광객을 마차에 태우고 왼쪽에서 달려오는 말(馬).
누가 일부러 꿰어 맞춰놓은 듯한 구도였습니다.
1000년의 세상을 구경했을 돌탑(제 눈엔 돌탑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과, 100년 안쪽의 삶을 등에 진 노인, 그리고 다섯 손가락이면 살아온 날을 헤아리고도 남을 말.
애당초 근본도 다르고 살아온 세월도 다른 대상들이 만나, 헛헛하던 나그네에 가슴에 따뜻하고 조화로운 그림으로 들어앉은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이질적 존재=배척 대상’이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서로 다른 존재들이 모였기 때문에 더 조화로운 것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받아들여 어깨를 겯고 함께 걷다보면 미운 사람도 예뻐 보이게 돼 있습니다.
‘관계’까지 헤아릴 능력이 안 되는 제 카메라는, 그 날 마음에 드는 풍경 하나를 만나 나름 바빴습니다.
이호준 /시인.여행작가.칼럼리스트 sagang@mediasoom.co.kr<사라져가는 것들 잊혀져가는 것들><클레오파트라가 사랑한 지중해를 걷다><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안부><자작나무 숲으로 간 당신에게> <나를 치유하는 여행> 등의 여행서, 산문집과 캘리그래피 시집 <사랑은 저 홀로 아름답고>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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