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먹는 밥을 뭘 그렇게 격식 갖춰 차리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실제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혼자니까” 이렇게 대답하면 선뜻 무슨 뜻인지 알아채지를 못한다.
자존심 때문이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오랫동안 혼자 생활하면서 스스로 세운 의식주와 관련한 몇 가지 원칙이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혼자라도 밥상을 제대로 차려 먹자는 것이다. 또 하나가 질감이든 촉감이든 기분 좋은 이부자리를 갖추는 데에는 아끼지 말자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내가 조리하는 음식의 찬거리, 내가 덮는 이부자리, 내가 입는 옷만은 늘 직접 고른다.
물론 이런 모습이 호사로 비칠 수도 있겠지만 이 정도 유별남은 한 인간의 개성과 권리로 존중받아야 마땅하지 않을까. 남한테 해를 끼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리고 내가 점심밥이나 저녁밥은 건너뛰거나 다른 걸로 때우기도 하지만 아침밥만은 꼭 챙겨 먹는 건 순전히 어머니 때문이다.
어머니는 살아계실 적에 단 한 번도 아침밥을 굶겨서 식구들을 밖으로 내보낸 적이 없었다. 그땐 누구 어머니나 다 그러셨겠지만.
12년 만에 다시 남해에 와서 혼자 밥상을 차리며, 울컥 목울대가 저리다.
차림/찐채소쌈밥, 소라애호박국, 가자미식혜, 강된장
다산초당에서
산그늘이 내리고
나무들은 모두
그림자를 거둬들였다.
풀들도 순순히 제 색깔을
어둠 속에 맡기고
어차피 길손들은
서둘러 산을 내려갔다.
다시 세상은 적막하여라
이따금 낮게 산죽 쓸리는 소리
언제 오셨나 천일각 위에
달님 한 분 내려다보고 계시다.
-시집 ≪혼자 먹는 밥≫에서
오인태 시인은 62년 경남 함양에서 태어나 91년 문예지『녹두꽃』추천으로 시인이 된 뒤, <그곳인들 바람 불지 않겠나> <혼자 먹는 밥> <등뒤의 사랑> <아버지의 집> <별을 의심하다> 와 같은 시집과 동시집 <돌멩이가 따뜻해졌다>를 펴냈습니다. 진주교대와 진주교대대학원을 나와 경상대학교대학원에서 문학교육을 전공하여 교육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교육전문직으로 일하며 틈틈이 시와 동시, 문학평론, 시사 글 등 다방면의 글쓰기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