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같이 먹는다는 것 – 오인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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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같이 먹는다는 건 삶을 같이 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삶을 같이하는, 즉 공동체의 가장 기본단위인 가정의 성원을 ‘식구’라 부르는 것이리라. 요즘은 식구끼리도 밥상을 마주하기가 쉽지 않다. 공동체가 무너졌다는 방증이다.

내가 매일같이 얼굴도 모르는 이들과 변변찮은 밥상이나마 나누고자 하는 것은 공동체 복원에 대한 나름의 염원과 향수를 표현하는 일이다. 종종 사람들을 불러 모아 밥과 술을 사고 형편 닿으면 내 손으로 밥을 지어 나눠먹는 일도 마찬가지다. 밥 한 그릇, 국 한 그릇 차려놓은 독상이지만 나 혼자가 아니라 수많은 식구들이 함께 하는 두레밥상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호롱불이나 남포등 아래 식구들이 옹기종기 둘러앉아 숟가락을 부딪치며 나누던 두레밥상, 모를 내거나 타작하는 논머리에서 길 가는 나그네까지 불러 먹던 들밥, 누구집이든 경사가 있으면 온 마을 사람들이 서로 일품을 팔아 차리던 잔칫상

아, 어느 가을 한나절 갈 곳 없는 해직교사들끼리 덕유산을 오르며 땀과 눈물로 범벅된 주먹밥을 나눠먹으며 낮게 부르던 *‘산죽’

다시, 찬 주먹밥을 뜨겁게 나눠 먹으며 함께 추구할 가치와 공동선이 우리에게 있는 걸까?

눈 감아도 혼자 바다요, 눈 떠도 혼자 바다인 나날이다. 해풍 맞고 큰다는 남해시금치가 어떻게 이리 다디달 수 있는지.

 

*해직교사의 노래

 

차림/ 시래기국, 새우장, 애호박전, 쪽파무침

 

대줏밥을 추억함

장리쌀을 내서라도 한 집안의 자존심과
대주의 권위를 지키던 때가 있었다

온통 검은 보리쌀 가운데 묻어놓은
단 한 줌의 쌀,
들끓는 솥에서 행여 흩어질세라
고스란히 퍼 담은
대줏밥, 그 희디흰 한 그릇의
결집과 자존심,
누구도 그걸 불평등이라 말한 적 없었다
짐짓 포만하신 듯
아버지는 두어 번 헛기침과 함께
반도 더 남은 밥그릇을 슬쩍 밀어놓으시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대줏밥은 아버지의 독차지가 아니라
우리 자식들의 몫이었던 셈인데,
다시, 공평하게 나누어지던
그 한 두어 숟갈씩의 다디단
은혜와 권위,
누가 그런 아버지의 심장에 칼을 꽂을 것이며
또한 자식을 비정하게 생매장할 것인가
대줏밥, 그 한 줌의 쌀에 대한 기억마저 기어이 잊어
버린, 지금

이 땅의 아버지들은 몰래 비정의 칼날을 갈고
자식들은 뿔뿔이 햄버거나 마른 빵조각을 씹으며

-시집 ≪별을 의심하다≫에서

 

 

 

 

 

 

시인은 62년 경남 함양에서 태어나 91년 문예지『녹두꽃』추천으로 시인이 된 뒤, <그곳인들 바람 불지 않겠나> <혼자 먹는 밥> <등뒤의 사랑> <아버지의 집> <별을 의심하다> 와 같은 시집과 동시집 <돌멩이가 따뜻해졌다>를 펴냈습니다. 진주교대와 진주교대대학원을 나와 경상대학교대학원에서 문학교육을 전공하여 교육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교육전문직으로 일하며 틈틈이 시와 동시, 문학평론, 시사 글 등 다방면의 글쓰기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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