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종이새 – 유희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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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종이새를 접으면서 이야기 했습니다.

“전쟁이 터지고 국군과 인민군이 서로 접전 지역을 밀고 당기던 시절에 외할아버지는 춘천이 위험에 처해지자 강원도의 문익골로 피난을 했단다. 피난을 하는 도중에 처녀인 딸이 있다는 것이 부담이 되었지. 처녀인 딸년을 피난길에서라도 시집을 보내야겠다고 마음먹고 신랑감을 찾았대. 처녀인 딸은 어느 쪽의 군인이라도 널름거리기 일쑤여서 피난을 떠나는 처지였지만 신랑감을 구할 수밖에 없었겠지. 토막집 아들? 내가 들은 바로는 토막집 아들에게 중신이 들어왔는데 난 불만 때고 사는 사람은 그냥 맘이 가지 않아서 시쿤둥 했어. 아마도 숯을 만드는 실속 있는 사람 이였지 싶다. 그런데 난 싫었어.”

엄마는 종이새를 열 댓 개 째 접고 계셨습니다. 엄마의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이야기 배경이 전쟁이라니 이건 완전히 한국 드라마 중 불후의 명작 [여명의 눈동자]에 버금하는 이야기를 하고 계신 것입니다. 나는 귀를 세우고 종이접기와 함께 시작된 이야기를 들으며 엄마의 얼굴을 살폈습니다. 엄마의 얼굴은 주름이 많아서 표정이 없는 듯, 있는 듯 움직임이 없었습니다. 목소리는 담담한 듯, 꿈꾸는 듯, 가끔 손에 종이학을 쥐고는 숨을 몰아쉬기도 하고 천천히 쉬기도 하는 것이었습니다.

인민군이 후퇴하면서 아버지의 고향 방하리에는 피바람이 불었습니다. 방하리에는 청년단을 조직하여 인민군을 상대로 게릴라 작전을 펴는 청년대장이 살던 마을이었는데 인민군이 후퇴하면서 그 사실을 알았다고 합니다. 인민군은 마을의 사람들을 불러 모아 놓고 청년대장과 청년들이 있는 곳을 알아내려고 했지만 누가 아들 있는 곳과 남편 있는 곳을 이실직고 하여 명을 이어 갈 수 있었겠는지요. 그들은 모두 한 웅덩이에서 죽었습니다. 마을 주민 수 십 명이 그 이유로 함께 죽었습니다. 지금 그 마을의 어귀에는 그날을 기억하여 그들을 애도하는 [방하리 6.25 반공피학살 반공위령탑] 이 세워져 있습니다. 산에 스며든 사내들은 배가 고픈데 밥을 나르던 어머니나 아내가 오지 않아 산을 내려와 보니 인민군은 후퇴하였고 모든 가족들은 몰살당한 후였던 것입니다. 피난을 하던 중 스무 살 어머니는 숯을 굽는 이보다 전쟁 중 모든 가족을 잃고 거의 정신이 나가 있던 청년대장에게 마음이 더 갔다고 합니다. 청년대장의 친구가 삶의 의욕을 잃고 귀신처럼 살고 있는 친구를 위해 신랑을 구하고 있는 외할아버지에게 소식을 전했던 것입니다. 외할아버지는 아들은 죽기 살기로 교육을 시켜도 딸은 남의 집 식구가 될 사람이니 교육을 시키지 않는 분이셨으나 아무리 전쟁 중이라도 그런 혼처를 딸에게 정해줄리 없었겠지요. 그 혼처를 자청한 것은 어머니였음이 분명합니다. 아버지에게 연민과 사랑을 느낀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시집을 가겠다고 고집했던 것입니다. 얼굴도 보지 못한 남자를 남편이라고 의지하며 피난길을 따라 나서는 엄마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갑니다. 너무 힘들어서 온 입이 부르트고 헐어있는 엄마를 향해 아버지는 “당신도 참 대단하군. 나를 따라 이 고생을 하다니….” 그 말 한마디를 엄마는 아직도 기억 한다고 합니다. 그 말이 곧 엄마를 안중에 두고 있다는 마음의 표시로 알고 입 꾹 다물고 피난길을 따라 나선 것입니다. 전쟁 중에 딸을 상처투성이인 남자에게 내어준 외할아버지는 한결 홀가분해 지셨을까요? 어머니는 외할아버지를 따라 피난을 가다 이제는 얼굴도 모르는 남자를 따라 피난을 떠났던 것입니다. 떠나기 전에 물 한 그릇 떠 놓고 혼례를 올렸으나 얼굴을 못 봐서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랐다고 합니다. 소금만으로 반찬을 하던 여러 날 도저히 소금만 먹을 수 없어서 인가에 들려 간장 한 종지를 얻어 꿀맛 같은 별식을 했다고 합니다. 그 날 처음으로 외할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 아직 변변히 남자가 되어주지 못한 남편을 대신하여 간장을 얻었던 것입니다. 그 일은 엄마가 생활고를 해결하는 첫 번째 발자국이 되었던 것입니다. 엄마는 단 한번 불쌍한 남자에게 마음이 끌려 혼인을 한 것 이외에는 감성적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않으셨던 분입니다. 그게 엄마의 타고난 성격인지 상처뿐인 남자와 살며 만들어진 성격인지 알 수는 없으나 엄마는 의심의 여지없이 단호하게 실용적인 삶을 사신 분입니다. 혼례 후 엄마는 잠시 충청도로 따로 피난을 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방하리에 남편이 있으니 그곳으로 다시 가겠다고 우겼고 발길을 돌려 방하리로 향했습니다. 충청도에서 방하리로 가며 눈길을 걷고 걷다가 흠씬 젖은 버선이 거추장스러워 벗어 버리고는 맨발로 고무신을 신고 방하리까지 걸었다 합니다. 얼굴만 대충 아는 그 남자에게 마음이 끌려서 그 남자를 찾아 그 험한 길을 나선 것을 보면 운명이란 것이 있기는 있는 모양입니다. 전쟁이 완전히 끝나지도 않아 큰 딸을 낳았고 이년 터울로 여섯의 자식을 보셨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마흔 넷의 청청한 나이로 가셨습니다. 그 비극적인 역사를 가슴에 묻고 오래 살기에는 너무 힘겨웠던 것이지요. 난 어려서 아버지를 잃었지만 그 눈빛만큼은 기억합니다. 쓸쓸함과 애틋함이 담겨 있던 형형한 그 눈빛을 말입니다. 엄마는 한 남자와의 약속을 묵묵히 평생 지키셨습니다. 아이들을 무사히 키우는 것이 무언의 약속이었겠지요.

 

1950년대는 세기의 사랑이라고 세계적 관심을 일으킨 결혼이 있었습니다. 미국의 영화배우 그레이스 켈리와 모나코의 왕자 레이니에의 결혼입니다. 한편의 동화처럼 아름다운 결혼이라고만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지만 그 결혼은 정략적인 결혼이었지요. 모나코의 관광 산업을 발전시키려고 지나 롤로브리지다와 마릴린 몬로를 집적대다가 자신의 목적과 가장 잘 맞는 그레이스로 낙점한 결혼입니다. 결혼 뒤 그레이스가 관광산업에 별 영향을 못 미치자 아내의 영화를 모나코에서는 상영하지 못하도록 하는 저열한 짓도 서슴치 않았습니다. 그레이스는 프랑스가 모나코를 합병하려는 모략에 휩쓸려 모나코를 아주 어렵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52세의 나이였던 그레이스는 자동차 충돌 사고로 세기의 사랑이라고 포장된 삶을 접었습니다.

겉보기에 화려한 사랑과 결혼 그리고 애증의 역사가 바다 건너에서 이루어지고 있을 때 엄마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일찍 헤어졌지만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한 결혼의 신의를 끝까지 지키며 이생의 인연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묵묵히 수행 중에 있었습니다. 세계는 입체적 도서관처럼 수많은 사랑과 결혼이 곳곳에서 이루어지지만 이면에 감추어진 도저히 설명 할 수없는 사연들은 우리가 알 수 없는 채로 묻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이는 것과 감춰진 것의 차이란 사실 아무것도 아니지요. 사실 아버지도 엄마도 전쟁 중에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택할 수밖에 없었던 생존을 위한 전략으로 보면 그 또한 그런 것이 되니까요. 그레이스와 레이니에가 서로에 대한 마음을 늘 뒷전에 두어야만 하는 위치에 있었고 우여곡절 끝에 그 상황을 극복할 수 있었던 입지가 되었을 즈음 사고가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사랑에 대한 순수한 마음은 영원히 묻힌 채로 정략적인 부분만 우리가 알게 된 억울한 사람들일지도 모릅니다.

드러난 마음과 드러나지 않은 마음은 사실 언제나 같은 편이라는 것을 자각하는 데는 꼭 뒤늦은 후회를 동반합니다. 굳이 감추려고 한 이유들이 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 시점에나 인정하게 됩니다. 객관성은 특별한 것들의 희생을 먹고 그 자리를 확보합니다. 그 시대가 만들어낸 도덕성은 객관성과 한 형제고요. 엄마가 회한에 젖어 아버지와 결혼했던 한 시대의 풍경을 묘사하며 담담히 나에게 말 할 때 엄마의 손에서 접힌 수많은 종이새들이 소복하게 쌓입니다. 수 십 년 동안 감내해야 했던 고통의 시간들도 곱게 접혀서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난 엄마가 감추고 싶은 마음이 많았던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마음을 다 양지로 불러내 바람에 말려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객관성이나 도덕성과는 거리가 먼 마음이 무수히 많지 않고서야 어떻게 나같이 복잡하기만 한 딸년을 낳을 수 있었겠습니까. 보이는 삶만이 전부인 재미없는 사람은 아니었을 것 입니다. 모든 추측은 자신의 잣대에서 비롯됩니다. 이렇듯 나의 잣대는 살짝 방자합니다만 그 이유로 가장 친밀한 엄마의 친구가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유희주 시인 :  1963년에 태어나 2000년 『 시인정신 』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2007년 미주 중앙신인문학상 평론 부문을 수상했다. 2015년 소설 [박하사탕-인간과 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 떨어져나간 것들이 나를 살핀다 』-문학사상(2011), 『 엄마의 연애 』-푸른사상 (2014)이 있다.  산문집 『 기억이 풍기는 봄밤 』-푸른사상(2016) 이 있다.  현재 매사추세츠 한인 도서관 관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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