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돌아가신 지 올해로 꼬박 이십 년, 어머니는 그보다 칠 년 전에 세상을 뜨셨으니 천애의 고아로 살아온 세월이 어언 이십 년이다. 아버지는 위로 누나 넷을 낳고 마흔에야 장손인 나를 낳았다. 그래서 내 기억속의 아버지는 백발에 가까운 초로의 노인네로 어머니는 쪽진 머리의 중년 아낙네의 이미지로만 인상되어있다.
어릴 적 늘 부러웠던 친구는 돈 많은 부모를 둔 친구가 아니라 젊은 부모를 둔 친구였다. 부모님이 오래 살아계시기만 한다면 나 혼자 힘으로도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무렵 한창인 찔레꽃, 아카시아, 밤꽃 따위 모내기철 꽃들은 왜 이리 하나같이 향기가 짙을까. 하필 배고플 때 부엌에서 새어나오던 밥내처럼 말이다. 어쩌다 물씬 풍겨오던, 동물성도 식물성도 아닌 어머니의 아릿한 몸내…….
이게 사위도 주지 않는다는 그 ‘아시정구지’다. 부추를 왜 정구지(精久持), 파옥초(破屋草)라 하는지 아시는가?
한약행상을 하며 전국을 떠도셨다는 할아버지, 내 유년의 기억엔 그 할아버지의 자식인 아버지의 부재의 날도 많았다. 자다가 눈을 뜨면 어머니는 바느질 중이거나 혼자 콩을 가리고 계시기 일쑤였는데……,
정구지보다도 어머니가 끓여주시던 추탕, 그리고 김이 모락모락 오르던 손두부 한 모의 기억이 뜨겁게 살아 오르는 저녁이다. 누가 개구리들을 저리 자지러지게 울려대나.
차림/닭국, 토마토소박이
오인태 시인은 62년 경남 함양에서 태어나 91년 문예지『녹두꽃』추천으로 시인이 된 뒤, <그곳인들 바람 불지 않겠나> <혼자 먹는 밥> <등뒤의 사랑> <아버지의 집> <별을 의심하다> 와 같은 시집과 동시집 <돌멩이가 따뜻해졌다>를 펴냈습니다. 진주교대와 진주교대대학원을 나와 경상대학교대학원에서 문학교육을 전공하여 교육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교육전문직으로 일하며 틈틈이 시와 동시, 문학평론, 시사 글 등 다방면의 글쓰기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