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민주주의 – 유희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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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유희주)

 

초등학교 2학년때 돌아가신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나를 무릎에서 내려놓지를 않으셨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뻐대뻐대 하며 기지개를 시켜 주실 때까지 꼼짝 않고 죽은 벌레 시늉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그 시대의 아버지들처럼 그닥 다정 다감 하지는 않으셨으나 우리 형제들에게 남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강열하기 그지없습니다. 내가 입병이 났을 때에는 별다른 약이 없으니 소금으로 입 주위를 문지르고 죽는다고 소리치는 나를 꽉 붙들어 안고는 당신의 입으로 입병 주위를 쭉 빨아내셨습니다. 비타민이 부족하여 생긴 입병을 당신의 민간요법으로 고치시려 한 것입니다. 다음날이면 감쪽같이 꾸덕꾸덕 입병이 나아 있었습니다. 형제들이 모이면 하는 이야기 중에 병아리 사건이 있습니다. 난 너무 어려 기억에 없지만 동화처럼 그 이야기는 내내 우리 형제들이 모이면 하는 이야기입니다. 아버지가 경찰하던 시절에 길거리에서 삐약거리며 돌아다니던 병아리 한 마리를 주워 오셨습니다. 메조를 먹여야 하는데 차조를 먹였습니다. 차조가 뱃속에서 퉁퉁 불으며 병아리의 모이 주머니가 말갛게 투명해 지도록 늘어난 것입니다. 뱃속의 차조가 다 보이도록 부푼 배를 가족들이 아슬아슬한 시선으로 바라보다 아버지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수술을 하자! 칼로 배를 째고 차조를 일부 꺼내고 배를 꼬매는 사건을 자식들이 다 내려다보는 중에 감행하신 것입니다. 병아리는 죽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병아리를 구하려고 내내 애쓰고 세밀하게 아이들과 교감했던 그날의 기억은 자식들에게는 감정의 동질감을 감히 아버지에게 느낌으로서 아주 그럴듯한 추억을 심어주셨던 것입니다.

전쟁의 상처를 잊고 사는 남쪽의 사람들은 빈곤한 가운데서도 고만고만한 행복을 키워 나가던 그즈음 1965년도에 북한의 대기근이 있었습니다. 1960년대 초, 중국의 농업 정책 실패로 인한 대기근은 만주지역 조선족 3만명이 북한으로 피난하면서 북한은 아사의 지역이 되어 갔습니다. 남쪽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였으나 북한의 식량지원이 시작된 해이기도 합니다. 남쪽은 1964년도에 경제정책 무게 중심을 ‘수출’로 옮기고 새마을 운동이 시작되어 초고속적인 경제 성장을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아버지와의 추억이 남겨지기 시작한 그 시점의 역사적 사건들은 아직도 끝나지 않고 지속되고 있습니다. 경제 성장을 이룩했던 대통령의 딸이 다시 대통령이 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 어려운 경제를 일으킨 대통령이었으니 그 딸도 지금의 어려운 상황을 잘 극복 할 수 있으리라는 판단을 한 모양입니다. 경제적인 성장 뒤로 국민들이 어떤 대가를 치렀는지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말입니다. 만약 그러한 대가를 지금 자신의 자식들이 치러야 한다면 아마도 비명으로 간 대통령 딸을 다시 대통령으로 세우는 일에 좀 더 신중했겠지요. 그 딸은 젊은이들이 아버지 시대에 독일과 월남으로 목숨 걸고 나갔듯이 경제 발전을 위해 서민들의 희생을 요구합니다. 희생의 대가는 누가 받을까요? 몇몇의 권력층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대한민국의 상식을 바꾸는 중입니다. 세상은 변했는데 아무런 서민적 경험이 없는 대통령의 딸은 이 시대의 위기를 극복하지 못해서 국민들을 벼랑에 세워두고 국민들의 희생만을 강요 하고 있습니다. 남쪽은 변화와 퇴보를 반복하고 북한의 기근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조선족이 북한으로 스며들었던 과거와 달리 북한 주민의 목숨을 건 탈출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만 조금 다릅니다. 굵직굵직한 역사적 사건이 연결되는 그 사이 사이에 사람들의 아름다운 추억들이 속속들이 채워져서 사람들은 그런대로 그 추억에 의지해서 살고 있지만 남쪽이나 북쪽이나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는 근대사입니다. 그 추억들을 다 빼 먹었을 때쯤이면 아직도 진행 중인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 중 몇 가지 정도는 종식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도 많은 아버지들은 사소한 소통으로 자식들을 행복하게 하고 있겠지요. 사소한 소통을 추억으로 갖고 있는 이들은 권력과 명예와 자본보다 늘 사람이 먼저인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이 땅의 아버지들은 자식들과 나누는 사소한 소통으로 민주주의를 실천하게 되길 바랍니다. 사소한 것이 세상을 바꾸는 꿈을 아직 꾸어도 된다는 말을 듣고 싶은 2016년 입니다. 4월에 내린 흰 눈이 꽃대를 덮었습니다만 오늘 낮에 보니 식물의 열기로 동그랗게 녹아 있었습니다. 내일은 좀 더 큰 원을 그리며 뿌리와 꽃대궁이 기지개를 켤 것입니다.

 

유희주 시인 :  1963년에 태어나 2000년 『 시인정신 』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2007년 미주 중앙신인문학상 평론 부문을 수상했다. 2015년 소설 [박하사탕-인간과 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 떨어져나간 것들이 나를 살핀다 』-문학사상(2011), 『 엄마의 연애 』-푸른사상 (2014)이 있다.  산문집 『 기억이 풍기는 봄밤 』-푸른사상(2016) 이 있다.  현재 매사추세츠 한인 도서관 관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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