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A Sickness–write by 공광규(Kong Kwangkyu)
병
고산지대에서 짐을 나르는 야크는
삼천 미터 이하로 내려가면
오히려 시름시름 아프다고 한다
세속에 물들지 않은 동물
주변에도 시름시름 아픈 사람들이 많다
이런 저런 이유로 아파
죽음까지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나는...
우현(雨絃)환상곡Rainy Day Fantasia For Strings–write by 공광규(Kong Kwangkyu)
우현(雨絃)환상곡
빗줄기는 하늘에서 땅으로 이어진 현(絃)이어서
나뭇잎은 수만 개 건반이어서
바람은 손이 안 보이는 연주가여서
간판을 단 건물도 고양이도 웅크려 귀를 세웠는데
가끔 천공을 헤매며 흙 입술로 부는 휘파람...
담장을 허물다Knocking Down Walls–write by 공광규(Kong Kwangkyu)
담장을 허물다
고향에 돌아와 오래된 담장을 허물었다
기울어진 담을 무너뜨리고 삐걱거리는 대문을 떼어냈다
담장 없는 집이 되었다
눈이 시원해졌다
우선 텃밭 육백 평이 정원으로 들어오고
텃밭 아래 사는 백 살...
모텔에서 울다 Crying At The Motel–write by 공광규(Kong Kwangkyu)
모텔에서 울다
시골집을 지척에 두고 읍내 모텔에서 울었습니다
젊어서 폐암 진단을 받은 아버지처럼
첫사랑을 잃은 칠순의 시인처럼
이젠 고향이 여행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얼굴을 베개에 묻지도 않고 울었습니다
오래전 보일러가 터지고...
놀란 강Spooked River– write by 공광규(Kong Kwangkyu)
놀란 강
강물은 몸에
하늘과 구름과 산과 초목을 탁본하는데
모래밭은 몸에
물의 겸손을 지문으로 남기는데
새들은 지문 위에
발자국 낙관을 마구 찍어대는데
사람도 가서 발자국 낙관을
꾹꾹 찍고 돌아오는데
그래서 강은 수 천리...
살생Killing -write by 맹문재 (Maeng, Moonjae)
살생
대지를 닮은 하늘과
하늘을 닮은 대지와
하늘과 대지를 닮은 영혼에게 물어보아야 한다는
살생의 계율이
방아쇠를 당긴 뒤 떠올랐지만, 미안하지 않았다
총을 내려놓지 않는 사냥꾼처럼
또 다른 순간을 기대했다
나는 손바닥을...
책이 무거운 이유The Reason That Books Are Heavy–write by 맹문재 (Maeng,...
책이 무거운 이유
어느 시인은 책이 무거운 이유가
나무로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책이 나무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시험을 위해 알았을 뿐
고민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 말에 밑줄을 그었다
나는...
나는 핸드크림을 바르지 않는다I Have No Moisturizer On My Hand or...
나는 핸드크림을 바르지 않는다
대학교수의 손이 왜 이래?
악수를 하는 사람들은
나뭇등걸처럼 갈라진 나의 손등을 보고
놀라기도 하고 놀리기도 한다
나는 정답 같은 당당함을 가지려고 하면서도
그때마다 움츠러든다
내가 핸드크림을...
김규동 시인Gyu Dong Kim, the Poet-write by 맹문재 (Maeng, Moonjae)
김규동 시인
의지로 당나귀의 울음소리를 슬퍼했다
의지로 친구들과 해방가를 불렀다
의지로 하숙집 쌀밥 앞에서 울었다
의지로 함북 종성에서 서울 을지로까지 걸어왔다
의지로 개미장에서 일자리를 찾았다
의지로 하늘을 바라보며 동생의...
물고기에게 배우다 Learning From Fish- write by 맹문재 (Maeng, Moonjae)
물고기에게 배우다
개울가에서 아픈 몸 데리고 있다가
무심히 보는 물속
살아온 울타리에 익숙한지
물고기들은 돌덩이에 부딪히는 불상사 한번 없이
제 길을 간다.
멈춰 서서 구경도 하고
눈치 보지 않고 입 벌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