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효기간 없는 애도의 행복- 김응교 시인이 바라본 윤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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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복 윤동주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

 

 

슬퍼하는 자는 왜 복이 있을까. 영원히 슬퍼하라니, 저주 아닌가.

그가 십대 때 쓴 동시들을 보면 이미 그 이유가 써 있다.

싸늘한 “지난밤”에 “지붕이랑 길이랑 밭이랑 추워”해서 흰 눈이 이불처럼 덮어줬다고 그는 상상한다. 그냥 눈 덮인 풍경화일까. 실은 사람들이 얼어 죽을 “지난밤” 따스하게 덮어주는 이불을 그린 동시다. 본래 제목이 “이불”이었는데 지우고 ‘눈’으로 바꾼 것은 괜찮은 솜씨다.

동생이 오줌 싸서 이불에 말리는 ‘오줌싸개 지도’ 앞부분은 재미있다만, “꿈에 가본 엄마 계신/ 별나라 지돈가?/ 돈 벌러 간 아빠 계신/ 만주땅 지돈가?”라는 구절에서 멈칫한다. 오줌에 전 이불을 말리는 아이는 부모 없는 결손가족 꼬마다.

넣을 것이 없어 걱정하는 ‘호주머니’를 의인화한 동시도 재미있다. “겨울만 되면/ 주먹 두 개 갑북갑북”이란다. 갑북갑북이란 가뜩가뜩의 함경도 사투리다. 가진 돈이 없어도 주먹이라도 있으니 힘내라는 동시다.

숲으로 ‘반딧불’ 주우러 가자는 구절은 재미있지만, 2연에서 “그믐밤 반딧불은/ 부서진 달조각”이라는 표현은 섬뜩하다. “그믐밤”에는 초승달이 뜬다. 보름달이었던 달이 자기 몸을 쪼개 조각을 떨구면 반딧불로 변하여 세상은 아주 쪼끔 밝아진다. 윤동주는 초승달이나 반딧불 같은 존재가 되기를 꿈꾸었을까.

이미 그는 슬픔과 재미있게 살아왔다. 좋아하던 <맹자>에 깔려 있는 여민동락(與民同樂)의 세계다. 아낙네가 구루마를 끌고 가면 뒤에서 밀어주고, 일하다가 지쳐 있는 농부 아저씨와 자주 대화했던 그였다. 연희전문학교 시절에 쓴 ‘해바라기 얼굴’ ‘슬픈 족속’에서도 이미 그는 슬픔 곁에 있다.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다”는 구절은 이미 온갖 슬픔을 명랑하게 노래해온 그에게는 자연스럽다. 타인의 피로를 함께 나눌 때 회춘(回春)을 만끽한다는 ‘우리-피로’(페터 한트케)가 그의 시에 넘친다. 아이 적부터 그는 슬픔을 받아쓰는 작은 대언자 역할을 해왔다.

‘팔복’(1940년 12월)을 쓰고 오 개월 이후에 쓴 ‘십자가’(1941년 5월)에서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그리스도에게/ 처럼”, 슬픔과 함께 살아왔던 예수는 괴로웠지만 행복했다. 이어서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내놓겠다고 한다. 모가지를 내놓는 태도야말로 “영원히 슬퍼하”겠다는 다짐이다. ‘늪을 기어가는 기쁨’이라는 주이상스(라캉)라는 말을 빌릴 것 없이, 동주는 괴로웠던 사나이가 선택했던 행복을 택한다.

‘서시’(1941년 11월)에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겠다며 함께 슬퍼하는 행복을 택한다. ‘서시’에서 “그리고”라는 단어는 아마득하다. “한점 부끄럼 없기를” 바라는 자기성찰과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한 이후에 “그리고” 나서 나한테 주어진 길, 가고 싶은 길을 가겠단다. 내게 주어진 길을 가기 전에 먼저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겠다는 못 말릴 다짐이다.

인도나 바티칸이나 예루살렘으로 가기 전에, 진짜 성지순례는 모든 죽어가는 것을 찾아가는 일상이어야 한다. 홀로 사는 노인들, 장애인이나 쌍용자동차 해직자 가족이나 용산참사와 세월호 유가족처럼 지금 죽어가는 이들부터 살핀다면, 바로 거기에 예불과 미사와 예배가 있다. 대통령과 정치가와 시민들이 “모든 죽어가는 것”부터 살핀다면 그 순간에 바로 혁명이 시작될 것이다. 던적스러운 권력에 몰두하며, 죽어가는 국민을 살피지 않는 지도자는 필요없다.

당연히 애도에는 마감시한이 없다. 함께 통곡하면 위로가 되고, 연대가 생기며, 힘이 솟는다. “영원히” 함께 슬퍼하고 함께 웃는 삶이 행복하다며 그는 축하보다 애도 곁으로 가려 한다. 영원히 슬퍼하는 행복한 몰락에 동의하지 않는 자에게 윤동주는 그냥 교과서에 실린 시, 혹은 팬시상품일 뿐이다. 모든 죽어가는 것 곁에서 영원히 슬퍼하는 길, 이 짐승스런 시대에 긴급히 필요한 행복론이다.

 

 

 

김응교 시인·숙명여대 교수·<처럼-시로 만나는 윤동주> 저자

 

자료출처 : 한겨레신문 http://ww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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